플라비우스 스틸리코(Flavius Stilicho)

A.D 359년 ~ A.D 408년

(서)로마 제국의 명장. 서로마 제국의 말기는 그저 비참하고 힘없이 쓰러진것으로 묘사되지만, 그런 무너져가는 제국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은 충신이 있었다. 그가 바로 '플라비우스 스틸리코'로 유능한 명장이지만, 카이사르나 스키피오, 폼페이우스 같은 장군들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이유는 서로마가 망해가던 시기의 장군이었고, 그 혼자의 힘만으로는제국의 멸망을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그를 로마 최후의 장군이라고 평가하였다. 물론 이는 서로마 제국에 한정되는 이야기고,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살아남아 무려 1000년을 더 갔다. 

(그리고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한다.)

1. 위기의 로마 제국

4세기 말 로마 제국은 북방 게르만족들의 침입(민족대이동), 평민층의 몰락, 부패한 지도층에 의해 제국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특히 빈부격차가 가장 심각한 문제였는데, 주로 대지주로 구성된 상위 5% 정도의 시민들이 제국의 부 80%를 독점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은 커다란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따금씩 유능한 황제가 나와서 위기를 극복하여 제국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는데, 이 당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A.D 379년 로마 제국에서는 테오도시우스가 새로운 황제로 집권하였다. 그는 대제로 평가받을 만큼 유능한 행정가이자 군인이었는데(테오도시우스 성벽이라는 유명한 성벽을 쌓은 황제이기도 하다), 황제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무너져가는 제국을 일으키기 위해 16년 동안 동분서주하였지만, 불과 49세의 나이에 과로로 쓰러졌다.

죽기 직전,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제국을 동서로 양분한 뒤 첫째 아들 '아르카디우스'에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로마 제국을, 둘째 아들 '호노리우스'에게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로마 제국을 맡겼다. 그러나 그의 두 아들들은 모두 어렸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근위대장 '스틸리코'에게 자식들의 안위를 부탁하고 세상을 떠났다. 

*황제가 왜 스틸리코에게 서로마하고 동로마를 동시에 맡기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당시 서로마와 동로마라고 하는 개념은 단지 통치의 효율성과 업무 분담을 위해 나눈 것일뿐이지, 분리된 별개의 주권 국가가 아니었다. 중국의 황제와 로마의 황제개념은 엄연히 다르며, 로마의 황제는 중국식의 전제군주가 아니라 일종의 최고경영자(CEO)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당대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각각 서로마, 동로마가 아닌 그냥 로마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2. 황실 근위대장이 된 스틸리코

로마 제국의 최고 실세로 떠오른 근위대장 스틸리코는 반-야만족(semi-barbarus) 출신이었다. 어린시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젊은 나이에 군인이 되어 여러 뛰어난 활약을 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를 근위대장으로 삼고, 자신의 양녀 세레나(Serena)를 아내로 주는 등 스틸리코를 총애하였다. 

그러나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이듯, 갈수록 높아지는 황제의 믿음에 비례하여 그를 질투하는 세력이 생겼다. 그들은 스틸리코를 음해하려는 음모를 세우지만 스틸리코의 아내가 된 세레나의 발빠른 대처로 대부분 분쇄되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고, 위에 언급한것처럼 그의 유약한 자식들, 호노리우스(서로마)와 아르카디우스(동로마)가 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서고트족(게르만족의 일파)의 왕 '알라리크'가 동로마 제국을 침공하지만, 스틸리코가 이끄는 로마군이 출동하여 서고트족의 침공을 격퇴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스틸리코가 이끄는 로마군이 침공한 서고트족과 완전히 결판을 내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동로마 황제로부터 귀환하라는 전갈이 왔다. 스틸리코가 전공을 세울것을 시기한 동로마의 재상 루피누스의 간계였다. 스틸리코는 루피누스의 짓을 눈치챘지만, 일단 명령에 복종하여 귀환한다. 

3. 간신 루피누스

동로마 제국의 재상 루피누스는 원래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의 이름없는 시골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말솜씨로 법률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러한 성공을 발판으로 승진을 거듭하였다. 그는 근면과 능력으로 겉모습을 포장하고 교만함과 악의, 탐욕 등을 숨긴 후, 황제의 신임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으며 마침내 재상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활하고 탐욕스러우며 전형적인 간신스타일이었던 루피누스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가혹한 세금, 수치스러운 뇌물 수수, 부당한 몰수 및 부당하고 광범위한 강탈 조치로 동로마 제국의 부를 끌어모았으며, 온갖 간계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정적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제거해 나가기 시작한다.

루피누스 덕분에 스틸리코가 귀환하자 서고트족은 동로마 제국을 침공하여 다시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루피누스는 그의 악랄한 행태를 혐오한 몇몇 로마 병사들의 습격에 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루피누스의 폭정에 시달린 동로마 제국의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모두 그의 시체를 토막내어 끌고다니며 짓밟으며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일국의 재상 치고는 참 아름다운 결말이다(...)

4. 환영받지 못하는 영웅

루피누스가 죽은 후,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가 또 다시 동로마를 침략하여 무려 1년동안 유린하지만 스틸리코가 다시 되돌아와 알라리크를 격퇴시켰다. 그러나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를 비롯한 신하들의 견제에 밀린 스틸리코는 동로마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스틸리코가 떠나자 서고트족은 다시 동로마를 침공하여 유린하기 시작했고, 혼자 서고트족을 격퇴하기 힘겨워한 동로마 제국은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를 지방의 군사령관 직을 하사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동로마 제국의 고위 관료들은 시민들의 존경, 주위 야만족들의 애정을 한몸에 담고있는 '스틸리코'를 제거하기 위해서 자객들을 여러차례 보내어 그를 암살하려고 시도하였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콘스탄티노플 원로원은 스틸리코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쇠퇴하고 있다고 하나, 당시의 로마 제국은 여전히 서양 세계의 중심 국가였다. 이민족 출신의 장군이 초강대국 로마에서 성공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틸리코가 주위 이민족들에게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강남스타일로 미국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싸이가 온국민의 사랑을 받는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5. 북아프리카 속주의 반란

제국의 북쪽에서는 로마군과 게르만족 간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북아프리카 속주는 북아프리카 담당 군사령관이었던 '길도'를 중심으로 한 반란군에 의해 장악되었다. '그냥 일개 속주가 날라갔군'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현재는 사막이지만 고대의 북아프리카 속주는 이집트와 함께 로마 최대의 곡창지대 중 하나로, 로마 제국의 식량창고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실제로 북아프리카에서 반란이 일어나 더이상 곡물 수입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로마의 식량값은 폭등하였고 시민들은 극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서로마 제국의 총사령관 스틸리코는 일단 갈리아(프랑스) 내륙에서 생산된 밀을 대규모로 수입하여 곡물 가격을 안정시킨 뒤, 부하장수 '마스케젤'에게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령하였다.

*진압군 총사령관인 '마스케젤'은 원래 북아프리카 반란군 지도자 '길도'의 동생이지만, 형과의 세력싸움에서 밀리는 바람에 자신의 자식들과 부인을 잃게 되어 누구보다도 길도를 증오한 사람이다.

'마스케젤'은 로마 고참병 5천명을 이끌고 북아프리카 해안에 상륙했고, 진압군을 막기위해 반란군 대장 '길도'는 7만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였다. 전투가 본격적으로 일어나자, 쪽수만 많지 평소 훈련도가 낮고 불만이 많았던 반란군들은 어이없이 흩어졌고 반역자 '길도'는 달아나다 붙잡혀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프리카 속주의 식량을 이용하여 제국을 휘어잡으려 했던 길도의 야망은 자신의 동생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러나, 피를 거의 흘리지 않고 북아프리카 반란 진압을 하는데 성공한 마스케젤은 스틸리코와 함께 다리를 건너던 중 물에 빠져 익사하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스틸리코가 일부러 마스케젤을 익사시켰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않다.)

6. 서고트족의 반란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뒤에 언급하겠지만 결국 로마시를 약탈하는데까지 성공한다.) 

한편 로마군의 지방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는 서고트족에게 로마식 훈련법을 받고, 로마식 장비로 무장하게 하는데 성공하였고, 마침내 서로마 제국을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서고트족 병사들은 자신의 부족들을 이끌고 풍요로운 이탈리아 땅을 향해 진격하였다. 이 당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당시 16세)는 수도 메디올라눔(지금의 밀라노)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서고트족의 침공소식을 접하고는 지레 겁을 먹고 남프랑스로 도망칠 궁리를 한다.

*서로마의 수도가 왜 로마가 아닌지? 로마 말기로 갈수록 로마시는 국경지대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전략적 가치가 점점 떨어졌다. 따라서 국경지대에서 좀 더 가까운 밀라노로 수도를 옮긴 상태였다.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뒤에 언급하겠지만 결국 로마시를 약탈하는데까지 성공한다.) 

한편 로마군의 지방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는 서고트족에게 로마식 훈련법을 받고, 로마식 장비로 무장하게 하는데 성공하였고, 마침내 서로마 제국을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서고트족 병사들은 자신의 부족들을 이끌고 풍요로운 이탈리아 땅을 향해 진격하였다. 이 당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당시 16세)는 수도 메디올라눔(지금의 밀라노)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서고트족의 침공소식을 접하고는 지레 겁을 먹고 남프랑스로 도망칠 궁리를 한다.

*서로마의 수도가 왜 로마가 아닌지? 로마 말기로 갈수록 로마시는 국경지대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전략적 가치가 점점 떨어졌다. 따라서 국경지대에서 좀 더 가까운 밀라노로 수도를 옮긴 상태였다.

한편, 충신 스틸리코는 겁먹은 황제를 다독여 안심시킨 다음 황제의 안전을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심복에게 맡긴 후 군대를 모으기 위해 북쪽으로 떠났다. 알라리크는 스틸리코가 없는 틈을 타 황제 일행을 잡기위해 무서운 기세로 진격하였지만, 스틸리코는 이미 그런것들을 모두 다 계산을 해놓은 상태였다.

알프스 산맥 방향으로 황급히 도망치던 호노리우스 황제 일행은, 서고트족 기병대에게 따라잡히는 바람에 포위당했다. 그러나 황제가 포로로 잡히기 일보직전에 스틸리코의 군대가 나타나 황제일행을 구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스틸리코는 침공한 서고트족을 완전히 박살내버렸고, (동네북 신세) 알라리크는 부랴부랴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알라리크의 아내는 로마군의 포로신세가 되었다. 이 사건 이전만 하더라도 알라리크의 부인은 남편에게 로마의 귀부인을 자신의 하녀로 선물해 달라고 졸랐을 정도로 의기양양하였으나, 그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고트족의 침공이 격퇴된 이후에도 야만족들이 다시 쳐들어 올것을 두려워한 호노리우스 황제는 수도를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항구도시 라벤나로 옮겼다. 라벤나 주위는 늪지대여서 장기간 포위전이 힘들고, 바다와 면해있는 도시인 관계로 후퇴하기에도 유리하며, 라벤나 주변 바다의 얕은 수심은 적의 대형 전함의 진출을 막는 훌륭한 방벽이었기 때문이다.

*라벤나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때까지 수도로 남았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이탈리아 지역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이후 로마시는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 즉 종교적 중심지로 남았을 뿐이다.

스틸리코가 알라리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둠으로써 서로마를 아슬아슬하게나마 안정(?)상태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엄청난 수의 게르만족들이 이탈리아를 향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틸리코는 숨쉴틈도 없이 곧바로 게르만족들의 대규모 침공에 대비하게 되었다.

7. 게르만족의 이탈리아 침공

동쪽에서 온 훈족의 침공에 의해 난민신세가 된 여러 게르만 부족들은 동고트족의 왕 라다가이소를 중심으로 한 무려 15만에 달하는 북방 게르만족 연합군을 결성한다. 아녀자들까지 일부 포함된 숫자이긴 하지만 엄청난 대군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로마의 영토로 들어왔다. 풍요로운 이탈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켜야 자신들이 살아갈 땅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르만연합의 15만 대군이 로마 제국의 국경선인 도나우 강(=다뉴브 강)의 요새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게르만족의 물량공세를 막아내지 못하여 로마 제국의 다뉴브강 방어선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이어서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스틸리코가 당장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은 1~2만에 불과했기 때문에 스틸리코는 노예들을 군대에 편입시키거나 자금을 모아 용병을 소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로마 원로원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를 빼앗아가는 것은 자신의 사유재산을 빼앗아 가는것과 마찬가지이다. 원로원 의원들이 좋아할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스틸리코는 황제인 호노리우스를 설득하여 이 안건을 밀어붙였고, 원로원은 울며 겨자먹기로 노예 징집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로원은 스틸리코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노예징집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끌어모을 수 있는 군대는 여전히 겨우 4만에 불과했다.

[피에솔레 전투]

스틸리코는 부랴부랴 4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피에솔레로 떠났다. 당시 피에솔레는 게르만족의 대군에 포위공격을 받고 있었는데, 스틸리코는 피에솔레가 분지 지형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숫적으로 우세한 게르만족을 향해 역포위망을 구축하였다. 이 당시 계절은 여름이었는데 게르만 족 군대는 무더운 날씨에 로마군에 의해 포위되자, 살인적인 더위와 물부족에 지쳐 자멸하였고, 게르만 연합의 총사령관이었던 라다가이소는 로마군에 잡혀 처형되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엄청난 수의 게르만족 포로를 잡았는데, 노예출신인 로마 병사들도 노예 2,3명을 거느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기 때문에 노예가격이 폭락했다. 그중에서 1만 2천명은 스틸리코의 로마군에 편입되었다.

불안감에 떨던 제국의 모든 사람들은 이 기적적인 승리를 진심으로 기뻐하였으며, 스틸리코는 로마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인 개선식을 치렀다. 그러나 스틸리코는 승리를 계속 거두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서로마 제국은 계속 몰려오는 북방 게르만족들에 의해 멸망할 것을 직감하고 대비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스틸리코는 알라리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그의 통솔력을 이용하여 서로마에 대한 방어벽 역할을 하도록 만드려는 계획을 세웠다. 알라리크는 스틸리코의 제안을 수락하는 대신에 그 대가로 금괴 4천 리브라(1500kg)를 요구했다.

금괴 4천 리브라는 부자 원로원 의원의 1년 수입 정도로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니었음에도 야만족과 동맹을 맺자는 제안에 원로원 의원들의 감정은 폭발하였다. 이민족 출신인 스틸리코에게 계속해서 억눌려서 지냈던것이 결국 분노로 이어진것이다. '람파디우스'라는 원로원 의원은 이 협정은 평화로 이어지는 협정이 아니라 노예화로 이어지는 협정이라며 격렬히 반발하였다. (돈이 아까워서 그런건 아니고?)

게다가 종교인들까지 나서 이교도인 게르만족과 동맹을 맺으려는 스틸리코는 이교도와 마찬가지라며 규탄하는 바람에 기독교도들과 스틸리코의 아내인 세레나도 스틸리코에게 등을 돌렸으며, 설상가상으로 제국의 수도 라벤나 황궁에서 스틸리코를 모함하는 간신배들이 늘어났다.

8. 황제 호노리우스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의 모습, 왠지 무능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인상이다.)

당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는 평소에도 매우 유약하고, 무기력하며 닭키우기를 좋아하는 겁쟁이에 불과한 황제였다. 18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를 '궁정안의 죄수처럼, 자국 내에서는 외국인처럼 행동했으며 제국의 멸망을 무관심하지만 끝까지 관찰한 자'라고 평가할 정도로, 열정도 재능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 유약한 황제에게 환관 출신 궁정 관료이자 성격이 교활한 올림피우스가 접근하였다.

올림피우스는 독실한 기독교도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자선사업을 하여 무려 성인으로 추앙받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가식이었고, 그는 그저 전형적인 간신배에 불과한 인물이다. 올림피우스는 황제에게 스틸리코는 반역을 꾸미고 있으며 그의 아들을 제위에 올리려고 한다고 모함하자, 그 말을 정말로 믿은 호노리우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스승이기도 하고, 생명의 은인이며 친아버지와도 같았던 스틸리코를 의심하게 된다.

9. 함정에 빠지다

어느날 황제 호노리우스가 로마 정규군단의 기지를 직접 순찰한다고 밝히자, 군단 담당 사령관들은 황제를 위해 연병식을 열었다. 그런데, 연병식 도중 갑자기 몇몇 병사들이 이탈하여 스틸리코의 심복 부하들을 모조리 살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환관 올림피우스는 이들은 스틸리코의 명령으로 황제를 암살하려 했다고 병사들에게 설명한 후, 스틸리코를 반역자로 치부하였다.

피의 학살극이 벌어지는 와중에 스틸리코파 부대장 한명이 겨우 살아남는데 성공하여 스틸리코에게 달아나 상황 설명을 하였다. 이 상황을 알게된 스틸리코의 직속 부하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노예, 용병 출신 병사들 같은 비정규군까지도 스틸리코가 반란을 일으키면 자신들이 끝까지 도와주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나 스틸리코 자신은 호노리우스를 보좌하겠다고 맹세한 상태였으며, 만일 반란을 일으킨다고 하여도 기독교인들과동로마 제국이 가만있을리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될시 서로마 제국이 무너질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결국 스틸리코는 천수를 다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명예로운 길을 택한다.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대신에 수도 라벤나로 가서 호노리우스 황제 앞에서 직접 자신의 진심을 해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스틸리코의 이런 결정에 실망한 그의 부하들 중 사루스라는 고트족 무사가 스틸리코를 암살하려 했으나, 스틸리코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평소처럼 라벤나로 향했다.

10. 스틸리코의 최후

라벤나에 도착한 스틸리코는 도시 내에 있는 성당에서 하룻밤 잔 후, 황제 호노리우스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스틸리코의 정적들은 성당에 있는 스틸리코를 찾아가 안전을 책임질테니 정당한 재판을 받으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적들은 스틸리코가 성당문을 나서기도 무섭게 재판도 없이 곧바로 사형 선고를 내려버렸다.

뒤늦게 스틸리코의 동료들이 구하러 달려왔으나, 스틸리코는 그의 동료들을 제지하고 서로마 최후의 장군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렇게 공석이 된 스틸리코의 자리는 환관 올림피우스가 차지하게 된다. 이는 제국이 제국 스스로 자기자신을 처형하는 꼴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야만족들에게 제국에 충성한 대가가 고작 처형이라는 선례를 남겼다.

스틸리코가 처형당한 후 그의 정적들은 스틸리코의 친구들을 고문하여 스틸리코의 죄명을 대라고 닥달하지만, 스틸리코의 친구들은 모진 고문 속에도 끝까지 스틸리코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로원은 로마인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형벌 중 하나인 기록말살형을 스틸리코에게 선고합니다. 스틸리코의 정적들은 그의 공적을 가리고 싶어하였지만, 그의 공적은 너무나 뚜렷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공적은 지워지지 않고 후세에 전해졌고 후세의 역사가들은 그를 서로마 최후의 장군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11. 약탈당하는 로마

스틸리코의 죽음 이후, 스틸리코에 충성하던 병사들은 억울한 상관의 복수를 위해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에게 갔다. 알라리크는 이들의 요청을 수락하고 로마로 진군하였고 결국, 로마는 야만족들에게 포위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황한 원로원은 사절단으로 원로원 의원 2명을 보내 금괴 4000 리브라를 줄테니 포위망을 풀어 달라고 알라리크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알라리크는 로마의 몸값 치고 매우 적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사절단이 로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있다고 호소하자 알라리크는 '풀은 무성할 수록 건초를 베어내기 좋다.' 라는 말로 응수하며 로마에 있는 모든 금과 은을 내놓고, 게르만족 노예를 모두 해방시키라고 명령하였다.

놀란 사절들이 "고트족의 왕이시여,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알라리크는 "그대들의 목숨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원로원은 끈질긴 협상 끝에 결국 금 5천 리브라, 은 3만 리브라, 고급천 3천필, 동방에서 만든 비단가운 4천벌 등 막대한 재산을 알라리크에게 바쳤다.

12. 로마의 황혼

알라리크가 로마 원로원을 협박해 풍부한 자금을 뜯어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야만족들이 알라리크 수하로 모여들어 알라리크 휘하 병력의 수는 무려 10만으로 불어났다.

서기 410년, 알라리크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로마를 포위하였다. 로마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호노리우스는 제국의 정예 병력 6천명을 로마로 급파하지만, 숫적으로 너무 적은 이 병사들은 가는 도중에 괴멸되고 말았다. 패닉상태에 빠진 황제 호노리우스는 그제서야 환관 올림피우스를 처형시키지만 기울어진 전세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로마는 별다른 공방전도 없이 내부의 배신자에 의하여 성문이 열렸고 결국 허무하게 함락되고 말았다. 서양 세계의 중심지이자 도시중의 도시로 평가받던 로마는 야만족들에 의해 3일 동안 약탈당하게 되고, 이 사건을 로마 약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비록 이 때의 로마시 함락으로 서로마 제국이 곧바로 멸망한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수백년동안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로마시의 백성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다. 도시 로마는 기원전 390년 켈트족에 의해 함락당한 이후 800년 동안 단 한번도 함락당한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마 제국은 410년의 로마 함락 사건 이후로도 약 66년을 더 존속하다가 476년에 결국 멸망하였다. 

그러나 멸망하기 이전인 410년에 알라리크에게 로마를 함락당한 것을 기점으로 사실상 제국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한것이나 다름없다.